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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기록

오펜하이머 리뷰 : 먹먹함의 무게로 짓눌려지다.

by 지구새 2023. 8. 23.

오펜하이머 영화 포스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시대가 가장 바라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간다.

클리셰로 범벅된 흔한 영화들과는 달리, 오로지 놀란 감독의 머릿 속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 들 만큼 진짜 이야기가 빚어진다.

대중은 시간이 흐를 수록 그 수준이 높아지기만 해서 더 까다롭고 섬세하고 탄탄한 이야기를 바란다.

 

오펜하이머  2023. 08. 15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2021. 03. 18

테넷  2020. 08. 26

덩케르크  2017. 07. 20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2016. 03. 24

퀘이  2015

인터스텔라  2014. 11. 06

트렌센던스  2014. 05. 14

맨 오브 스틸  2013. 06. 13

사이드 바이 사이드  2012

다크 나이트 라이즈  2012. 07. 19

디즈 어메이징 샤도우  2011

인셉션  2010. 07. 21

다크나이트  2008. 08. 06

프레스티지  2006. 11. 02

배트맨 비긴즈  2005. 06. 24

인썸니아  2002. 08. 15

메멘토  2001. 08. 25 

미행  1998

 

놀란 감독이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좀 살짝 물음표가 뜨긴한다.

메멘토 - 프레스티지 - 인셉션 - 트렌센던스 - 인터스텔라 - 덩케르크 - 테넷 - 오펜하이머

이렇게 전개되는 순서로 기억하는데, 중간에 낀 DC 유니버스의 소재들은 자꾸 별개로 생각된다.

아무래도 DC물은 코믹스의 소재를 다룬 것이라 놀란 감독의 평소 생각을 녹이기엔 부족 했을거란 편견이 들어가기 때문인 듯 하다.

사설이 길었는데, 오랜만에 놀란 감독이 오롯이 그의 머릿속을 보여준 영화. 오펜하이머는 생생했다.

 


 

본 글에 일부 스포일러가 될 문장들이 있습니다. 영화를 안보신 분 중, 스포일러가 걱정되신다면 읽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처연했다.

명백한 전기영화다. 그런데, 주인공 업적에 대한 전기가 아닌 오펜하이머의 내면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그는 놀라운 업적을 이뤄내고 그에 걸맞는 명성과 대우를 받았으나 핵폭탄이라는 존재가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 채게 된다.

이후, 그의 불안정한 심리는 죄책감과 뒤엉키고 결국 자기 자신을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몰아가며 죄책감을 덜고 싶어한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오펜하이머의 지위는 격변의 역사와 함께 곤두박질 치며 땅으로 떨어지게 된다.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오펜하이머의 마지막은 거대한 어두움으로 짓눌리고 그의 눈빛은 흐릿하고 처연해 보였다.

 

핵폭탄과 수소폭탄

오펜하이머는 스트로스(로버트다우니주니어)라는 인물과 대립관계를 이룬다.

오펜하이머가 핵폭탄을 만들어낸 위인이라면, 스트로스는 핵폭보다 더 강력한 수소폭탄에 힘을 싣고 맞선다. 

'국가 안보'라는 본인 논리에 힘을 싣기 위해 수소폭탄을 반대하는 오펜하이머를 메인 스테이지에서 내몰고자 하는데,

결과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

그나저나 핵폭탄보다 수소폭탄의 위력이 이토록 막강한 것인지 이 영화를 통해 짦막한 과학 상식을 알아간다.

이 대립관계를 풀어가는 놀란 감독의 영화 전개의 구조는 독특하면서 논리적이었다.

컬러와 흑백이라는 대비 구조를 두기도 했으며 시간의 흐름을 매칭하여 보여주어 더 흥미를 돋게 했다.

단, 이런 방식의 전개는 스토리를 빠르게 캐치하지 못하면 오히려 이야기가 혼란스럽게 뒤엉키게 되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사 하나하나를 잘 들어야했다. 이 영화의 전개 속도 또한 여느 영화의 1.5배는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3시간의 러닝타임에도 생각보다 졸릴 새가 없다.

 

놀라운 오펜하이머의 배우들

킬리언 머피의 연기력이란, 여타 인터뷰, 홍보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익히 들었던 터라 기대만큼 살아있는 오펜하이머 그 자체였다. 그런데, 내가 더 놀랐던건 스트로스를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다. 

로다주가 캐스팅 된 건 알고 있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나오는건지는 몰랐고, 스트로스를 보면서도 그게 로다주인걸 내내 모르다가 특정 대사에서 그의 보이스톤을 듣고 알아챘다. 워낙 아이언맨의 모습이 강했기 때문에 더 드러나지 않았을 수 도 있지만, 그 의 외모가 이렇게 시대극에 절묘하게 녹아들어 (킬리언 보다 더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 완벽히 다른 사람으로 보여질 줄은 몰랐다.

또한, 계략적이고 야망있는 내면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마블의 아이언맨 때 보다 더 깊고 깊은 '배우' 그 자체 였다.

맷데이먼은 또 뭔일일까?  그는 평소 그 만의 특유한 느낌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새로운 배우가 3번째 조연을 맡은 딱 그 정도의 농도로 연기했다. 과하거나 덜하지 않게 꼭 알맞은 균형을 만들어낸 멋진 연기라 생각했다. 에밀리 블런트, 플로렌스 퓨, 라미말렉 등... 네임드 배우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그 누구도 튀거나 겉돌지 않았다. 모두 한 목소리로 킬리언 머피를 위해서 지지하며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자체의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사실 이 대목에서 나는 좀 감동을 느꼈다. 

이후, 로다주가 인터뷰한 내용을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는데 모든 배우들이 킬리언을 위해 연기했다고 이야기 해서 놀랬다. 영화를 보면서 그걸 캐치할 수 있어서 기쁘다. 이 영화에서 잠깐 등장하지만 큰 줄기를 쥐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아인슈타인이 오펜하이머와 나누는 짧은 대화하는 장면이 초반부와 후반부에 1-2분 정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대화를 통해 오펜하이머의 사고의 흐름과 변해가는 그의 가치관을 잘 보여주고있다. 

아인슈타인 역에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라자러스 핏 의사를 연기한 톰 콘티가 맡았는데, 아인슈타인과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았다. 오펜하이머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유명한 아인슈타인이지만 시대적 배경으로 한 물 간 물리학자로 등장하는 그 의 모습과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 

 

삶과 업적의 도덕적 잣대

역사를 둘러보면 비범한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다. (행복하게 잘 산 사람도 있다 물론.. )

누구의 말처럼 그들이 태어난 존재 자체가 그런 업적을 만들기 위함일까?  

우리는 영웅이나, 연예인, 비범한 사람들에게 박수치며 열광하면서 그들의 실제 삶 또한, 박수받을 수 있는지를 검증하고 또 검증한다.

그리고, 그들의 오점을 찾아내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 그런 인간사의 모순된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졌다. 스트로스는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을 회피하고 정치적 힘만을 키우기위해 이슈성이 크며, 순수하게 오만한 오펜하이머를 타겟으로 두었다. 그리고 그의 전략은 당시, 실제로 먹혀들었다. 그의 업적에 대한 뜨거운 찬사는 빠르게 식어갔고 사람들은 죄책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흔들리는 눈 빛의 오펜하이머, 그의 지극히 사적인 삶에 대한 관심만 뜨겁게 달아오르게 된다. 너무도 쉽게 한 순간에 곤두박질 친 그의 인생 그래프를 보면, 영화 초반부의 인물과 동일인이 맞나 싶을정도로 허망한 마음이 들었다.

 

죽게 하거나 살게 하는 ...

이 영화는 과학에 대한 생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핵폭탄의 발견이 '세계2차대전'이라는 극도로 긴장된 시대에 만들어져서 '무기'가 되었으나 결국 핵의 본질은 '에너지'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은 핵을 세상 가장 무거운 '대량 살상 무기'로 만들지만, 기후위기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클린한 에너지를 만드는 존재로도 볼 수 있다.  모든건 인간이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무기가 되던가 더 나은 삶을, 생명을 영위하게 하기도 한다는 극단적인 절대 진리를 다시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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